[무엇이 노인을 사각지대로 내모는가?]
최근 즐겨보는 웹툰이 하나 생겼다. 바로 '나 혼자 산다'의 기안 84가 네이버 웹툰에 연재하는 <회춘>이다. 스토리의 세계관 설정이 굉장히 창의적이다. 인간의 생애주기는 다른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탄생-유년기-성년기-노년기-죽음의 단계를 거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기안 84의 <회춘>에서 인간은 유년기-성년기-노년기-성년기-유년기-죽음의 단계를 거친다는 설정이다. '회춘'이라는 제목이 내포하듯, 말 그대로 점차 나이가 들면서 노화가 진행되다가 다시 젊어지면서 신생아의 상태로 삶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이 만화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만화의 다양한 에피소드에서 노인이 어떻게 문화적, 제도적으로 사회의 사각지대로 밀려나는지, 그들이 어떻게 아웃사이더로 밀려나는지를 씁쓸하게 조망한다. 노인이 되어갈수록 회춘한다는 세계관 속에서도 노인은 육체만 젊어질 뿐, 그들이 놓인 상황과 그 안에서 느끼는 무력감, 소외감은 여전히 현실과 별다를 바 없다는 게 핵심이다. 결국, 노인이 괄시받고, 사회의 저 구석자리 끝으로 내쳐지는 이유가 혼자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노화된 육체, 쭈글쭈글해진 피부와 하얗게 새어버린 머리칼 등의 외적 용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 만화는 초고령화 시대에 돌입한 우리 현실에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를 제시한다. 우리가 은연중에 무의식적으로 표출하는 노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날카로운 반성의 메시지를 돌려서 전달하는 듯하다.
책 <나이듦에 관하여>는 비슷한 맥락에서 노인들이 사회로부터 받는 차가운 시선과 제도적 사각지대에 처하는 상황을 신랄하게 보여준다. 소름 돋을 정도로 현실적으로 말이다.
사람 나이 80대에 접어들면 자신이 이방인임을 실감하게 된다. 무심코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무릎이 찌릿하다. 혹은 젊은이의 시선과 눈이 마주쳤는데 나를 머리나 촉수 따위가 한두 개 더 달린 녹색 피부의 외계인 보듯 한다. 그럴 때 잠깐 잊고 있었던 진실이 나를 엄습한다. 바로 내가 늙은이라는 것. 나이 든 사람을 보면 혹자는 냉담하고 혹자는 친절하다. 어쨌든 무시당하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느 쪽이든 매한가지다. - <나이듦에 관하여>, 루이즈 에런슨, Being, P123 -
사람이 늙으면 갖가지 현실적인 문제가 따라온다. 하지만 그런 문제들은 노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힘겹게 만드는 여러 가지 요인 중 일부일 뿐이다. 노인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그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다. 생물학적 시간이 노년을 정의하는 유일한 기준은 아니다. (중략) 우리는 자연의 시계와 사회의 가르침 양쪽에 모두 동시에 순응하며 나이를 먹어간다. - <나이듦에 관하여>, 루이즈 에런슨, Being, P124 -
[나이듦에 대하여]
이 책의 저자인 루이스 애런슨은 노인의학 전문의이자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프란시스코 캠퍼스 의과대학의 교수이다. 사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의사라고 하면 정형외과나 치과의사, 내과의사 전문의만 생각했지 '노인의학'이라는 의대 분과가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만 그런 것일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나와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곧 우리의 현실을 반증하기도 한다. '인류에 봉사하는 데 내 일생을 바칠 것을 엄숙히 맹세한다.'라는 히포크라테스 선언과 달리, 의술을 통한 전인적인 인류애 실현을 소명으로 해야 하는 의료계에서도 노인은 저 먼 뒷전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인지하면 저자가 더욱 대단해 보인다. 이 책의 저자는 아놀드 P. 골드 재단이 수여하는 인본주의 교수 상, 올해의 캘리포니아 홈케어 의사상, 미국 노인의학학회가 수여하는 올해의 현역 임상 교육자 상을 비롯해 다수의 수상을 통해 의학계에서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실제로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자신의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이 투철하고, 환자이기 전에 한 인격체로서 노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가히 존경스러울 정도이다.
[이 책을 우리 모두가 읽어야 하는 3가지 이유]
사실 당신이 위의 내용을 읽어보아도 이 책이 왜 꼭 읽어야 하는 책인지 공감이 안될 것이 분명하다. 나 역시 그랬기 때문이다. 나와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 가지 이유로 우리는 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만 한다.
첫째, 우리는 그들과 함께 공생해야 한다.
국제기구에서는 한 나라의 고령화 정도를 가늠하는 지표로 다음의 기준을 활용한다. 한 사회의 인구통계학적 구성비에서 노인인구의 비중이 7% 이상일 경우 '고령화 사회', 14% 이상인 경우 '고령사회', 20% 이상인 경우 '초고령 사회'로 구분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주소는 어떨까?
2018년 8월 27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를 보면, 17년 11월 1일 기준 65살 이상 노인(내국인)은 712만 명으로 2016년보다 34만 명 늘었다.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3.6%에서 14.2%로 커져, 고령사회 진입이 확정됐다. 지난해 총인구(외국인 포함)는 5142만 명으로 전년(5127만 명)에 견줘 0.3% 증가했다.
(출처: http://it.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1/23/2020012303215.html)
통계자료에 기대지 않더라도 당장 거리로 나가보면, 대중교통을 이용해 보면 이를 직관적으로나마 추정할 수 있다.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남녀노소 불구하고 노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들은 국가기관에서 정책서비스의 수요자이며, 회사에서는 우리의 고객일 수 있다. 범위를 좁히자면 그들은 우리의 친구일 수 있고, 가족일 수 있다. 그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으며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고 무엇이 그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인지 고민할수록 그 사회 전체의 행복도가 달라진다. 그들 또한 인격체로서 우리와 함께 관계를 맺고 공생해야 할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
어떤 주제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의 진짜 문제는 내가 뭘 얼마나 심각하게 모르는지를 정확히 모른다는 데 있다. 그런데도 잘 모르는 한 사회집단이 다른 집단들보다 덜 중요하다는 시각이 있다면 그 바탕에는 그 집단을 잘 몰라도 별 상관없다는 태도가 반드시 깔려있다. - <나이듦에 관하여>, 루이즈 에런슨, Being, P136 -
노인이 행복해야 우리가 행복해진다. 무엇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그들에 대해 공부할 필요가 있다. 알아야 공감할 수 있고, 알아야 제도를 개선시킬 수 있고, 알아야 인식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인문주의 평론가 윌리엄 해즐릿은 '편견은 무지함이 낳은 자식이다'라고 말했다. 노인을 바라볼 때 가지고 있는 우리의 편견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이처럼 노인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깨부숴야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될 것이다. 다른 말로 우리는 노년기를 반드시 공부해야 한다.
둘째, 노인은 우리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
노인을 괄시하고 무시하는 태도, 무방비 상태에 가까운 사회적 안전망, 의료시스템의 기반에는 '내 일이 아니다'라는 편견에 기반한다. 당장 우리는 지팡이나 휠체어가 필요 없다. 당장 우리는 보청기가 필요 없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들이 필요하게 될 날이 우리에게도 온다.
누구나 사람에게는 부모와 조부모, 선배, 스승이 있다. 그들 모두 한때는 어린이였고 내 나이이기도 했다가 지금의 나이를 먹었다. 그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 걸 보면 때때로 편견은 무지함보다는 두려움과 공포로부터 태어나는 것 같다. - <나이듦에 관하여>, 루이즈 에런슨, Being, P148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근시안적인 시야에 가려져 먼 곳을 조망하지 못하는 듯하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쏜살같이 빠르게 시간이 흘렀듯, 눈 감았다 뜨면 우리도 그들이 되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 노인들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노력은 향후 우리의 노년기의 행복을 보장하는 길이다. 저자의 말과 같이 '그들은 우리의 미래이며 우리는 그들의 과거'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나의 노년이 상상하기도 싫은 구차한 생명연장과는 다른 모습이길 원한다면, 오늘날 노인의학의 현주소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 <나이듦에 관하여>, 루이즈 에런슨, Being, P27 -
셋째, 행복한 인생 3막을 위하여
대부분 젊은 사람들에게 노년기의 삶을 미리 생각하면 우울해지고 무력감을 느끼기 십상이다. 불편한 신체와 제약된 행동반경이 삶을 옥죌 것이므로, 노년기가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편견에 다음과 같이 반대한다.
사실 나이 들어서 좋은 점은 한둘이 아니다. 가정과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줄고 만족감, 삶의 지혜, 결정권은 늘어난다. - <나이듦에 관하여>, 루이즈 에런슨, Being, P151 -
노년기에는 상실과 박탈 말고도 훨씬 다채로운 이벤트가 우리를 기다린다. - <나이듦에 관하여>, 루이즈 에런슨, Being, P287 -
제대로 보지도, 듣지도, 걷지도 못하는 100세 어르신도 있지만, 일은 계속하되 양을 좀 줄여서 여가시간에 평생 꿈꿔왔던 새로운 취미에 도전하고자 하는 68세 현역도 있다. 노인도 노인 나름대로라는 소리다. - <나이듦에 관하여>, 루이즈 에런슨, Being, P321 -
이러한 편견은 어디서 온 것일까? 아마도 무지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노년의 삶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보고 연구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무지는 십중팔구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저자의 말과 같이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 없던 것들이 분명 존재하는 듯하다.
보려 하지 않으니 보일 턱이 없다. 노년기에는 오래 산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인생의 즐거움이 있다는 것도, 고령이 문제인 게 아니라 나이가 들면 특징과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라는 것도. - <나이듦에 관하여>, 루이즈 에런슨, Being, P146 -
그렇다면 행복한 노년기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 또한 공부이다. 노년기의 삶에 대해 공부하고, 어떤 육체적 변화가 있을지 미리 파악해서 준비하고, 건강을 관리하고 정서적 안전망을 미리 준비해놓는다면 노년기에만 누릴 수 있는 행복한 삶이 우리를 기다릴 것이다.
인간의 생사는 자연의 이치고 자연이 하는 일은 다 아름답다. 스러져 가는 생명에는 역동하는 젊음과는 다른 종류의 아름다움이 있다. 보다 정적이고 절제되어 있어서 눈여겨보지 않으면 알아채기 어려운 아름다움이다. - 나이듦에 관하여>, 루이즈 에런슨, Being, P349 -
대부분의 현대인들에게 인생 3막은 길고도 다채로운 무대가 될 것이다. 주인공인 우리들 각자에게 이번 무대가 어떻게 느껴질지는 전적으로 우리 자신의 태도에 달려있다. 부정적 선입견만 가득한 기존 통념의 틀을 깨부수고 한층 밝아진 눈으로 세상을 조망하면 새로운 선택지가 우리 앞에 펼쳐진다. 더욱 의미 있고 풍요로운 노년을 만들 수 있는 다른 길이 열린다. - 나이듦에 관하여>, 루이즈 에런슨, Being, P27 -
[노인이 행복한 사회, 우리가 행복한 사회]
이 책을 읽고 누군가 내게 "앞으로 이 사회가 어떤 모습이 되었으면 좋겠느냐?"라고 묻는다면 서슴지 않고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노인이 행복한 사회".
인본주의적이고, 인류애적인 사랑에 근거해서가 아니다. 앞으로 나의 부모도 노인이 될 것이고, 나도 노인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언젠가 세상에 태어날 나의 자녀도 분명 노인이 될 것이다. 따라서 나의 부모, 나, 자녀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사회가 노인이 행복한 사회로 탈바꿈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간절히 부탁드린다.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 지금 현재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책 <나이듦에 대하여>를 읽으며 생각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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