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멜로 실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 실험은 1960년대에 스탠퍼드 대학에서 진행한 유명한 행동 심리학 실험이다. 실험은 어린 아이 600명에게 먼저 마시멜로 1개를 주고, 15분 동안 이를 먹지 않고 참아내면 2개를 주겠다는 선언을 한 뒤 그들의 행동을 관찰한다. 유아들의 인내심을 테스트하고 실험에 참가한 아이들을 20년간 추적검사 하면서 그들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는 것으로 진행된다.
'마시멜로 검사 (mashmallow test)'는 이제 거의 상식으로 자리잡았다. 분명 이 내용이 인용된 육아서적만 해도 수십 권이 넘을 것이다. - <운명의 과학>, 한나 크리츨로우, p58 -
실험 결과는 15분 동안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참아낸, 소위 말해 인내심이 높은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그렇지 않은 대조군 보다 상대적으로 지적 능력과 학업 성취도가 훨씬 높았다는 것으로 증명된 바 있다.
1960년대에 스탠퍼드 대학에서는 아이의 성취 궤적 (acivement tranjactory)을 어린 나이 때부터 예측할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 일련의 연구를 진행했다. 이 연구자들은 특히나 만족 지연(delayed gratification)에 관심이 많았다. 연구자들은 만 네 살 반 정도의 아동 600명에게 마시멜로 하나를 그 자리에서 바로 받을 것인지, 아니면 15분을 기다렸다가 두 개를 받을지 선택하게 했다. 그리고 그 후에 20년 정도를 추적 연구해 보았더니 즉각적인 만족을 지연할 수 있었던 아동은 유혹에 굴복한 아동에 비해 지적 특성도 우수하고, 성취한 것도 더 많았다. 이는 어린 나이에 충동이나 식욕에 의한 행동을 인지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은 그 아동의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말해 주는 예측 변수로 기능하는 듯 보였다. - <운명의 과학>, 한나 크리츨로우, p58 -
'마시멜로 실험'은 실제로 해당 연구에 참여했던 '호아킴 데 포사다'의 <마시멜로 이야기>라는 자기계발서로도 출간되어 세간의 이목을 집중받았던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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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 이 연구결과가 틀린 것일 수도 있다는 의문을 제기하는 새로운 연구결과들이 제시되고 있다.
먼저, 이와 관련하여 2013년 로체스터 대학교의 홀리 팔메리, 리처드 애슬린 박사는 <Rational Snacking>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학계에 발표하였다. 그 내용은 '피실험자들이 실험자의 약속을 얼마나 신뢰하느냐'에 따라 연구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인내심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에 대한 신뢰도와 의구심의 정도에 따른 문제이기 때문에, '인내심이 강한 아이 (P; 전제)이면, 성공할 확률이 높다 (Q; 결과)' 라는 가설은 명제의 전제 자체가 잘못 설정되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안정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란 아이일수록 타인에 대한 신뢰도가 높게 나타나서 첫번째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기다리는 경향이 높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실험의 환경도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예를들어 마시멜로를 담은 그릇에 뚜껑을 덮어서 가리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아이들이 참아내는 시간이 2배 이상 길어졌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실험 과정 중 재미난 상상을 하게끔 유도할 때도, 전반적으로 아이들의 인내하는 시간이 훨씬 길게 나타났다고 말한다.
앞서 로세츠터 대학교의 홀리 팔메리, 리처드 애슬린 박사의 추가 연구와 같은 맥락에서, 기존 마시멜로 실험의 오류를 지적하는 연구가 2018년 뉴욕대학교와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도 진행되었다. 여기서는 가정의 소득과 환경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소득이 높고 안정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란 아이일 수록 첫 번째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더 큰 보상을 기다리는 경향이 높았던 반면, 소득이 낮고 불안정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아이의 경우 당장 자신에게 주어진 첫 번째 마시멜로를 바로 먹는 경향이 높았다.
뉴욕 대학교와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신경과학 연구진은 이 연구 결과를 재현할 수 있을지 확인하는 일에 착수했다. 그 결과 이들은 일단 부모나 1차 보호자의 사회경제적 배경이나 교육 수준을 감안하고 나면, 만 4세의 충동적인 아동과 의지가 강한 아동 상이에 나타났던 성취의 차이가 아동이 만 15세가 되면 대체적으로 사라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만 4세 때의 행동과는 상관없이 만 15세가 되면 부유한 전문직 가족 출신의 아동들이 그렇지 않은 배경을 가진 또래보다 일반적으로 성취도가 높은 것으로 나왔다. - <운명의 과학>, 한나 크리츨로우, p59 -
이는 직관적으로도 당연한 결과이다. 예를 들어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당장 먹고 사는 것이 힘들었던 1950~60년대의 세대와 비교적 풍족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2000년대 세대를 대상으로 똑같은 실험을 진행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1950~60년대 세대는 당장 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이므로, 2000년대 세대와 달리 지금 눈 앞에 주어진 첫 번째 마시멜로를 먹을 것이다.
이처럼 소득수준과 처해있는 경제적 안정성의 정도에 따라 합리적 선택은 달라지게 되어 있다.
스탠퍼드 대학의 연구자들은 실험을 설계할 때 이런 부분을 요인으로 고려하지 않고 누락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새로운 연구 결과는 직관적으로도 말이 된다. 결핍된 환경에서 자라다 보면 사람들은 장기적 보상보다는 단기적 보상을 선택하는 쪽으로 기울게 된다. 첫 번재 나온 마시멜로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고 믿는 아동에게는 두 번째 마시멜로가 그다지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부모가 돈이 없어서 약속을 항상 지키지 못하는 경우나 형제가 자기 것을 훔쳐가는 경우에서는 즉각적인 만족을 선택하는 것이 완벽하게 합리적인 전략이다.
- <운명의 과학>, 한나 크리츨로우, p59 -
신경과학과 뇌과학적인 측면에서 인간의 자유의지와 운명론을 다각도로 살펴보는 명저, <운명의 과학>의 저자 '한나 크리츨로우'는 책 내용에서 본 실험을 소개하면서 모든 사회과학 연구를 절대적으로 100% 신뢰해서는 안된다는 언급을 한다. 모든 연구의 결론은 잠정적인 결과이며, 연구자의 인지편향과 실험환경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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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것이 교훈적인 이야기라 생각한다. 분야가 무엇이든 모든 과학 연구의 결론은 잠정적이며 그 연구를 진행한 사람의 제약과 인지적 편향(cognitive bias)에 좌우된다. - <운명의 과학>, 한나 크리츨로우, p59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과학적 실험들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정반합의 과정을 통해서 기존 연구결과들을 뒷받침하거나 반박하고, 수정보완을 거쳐 새로이 통합되면서 인류의 지식체계와 과학의 패러다임은 지속 진화하고 있다. 연구결과와 이론들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되,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않을 것. 그리고 이와 다른 새로운 측면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키우는 것. 이러한 합리적 의심과 추론을 통해서 우리의 이성과 과학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더욱 자세히 공부하고 싶다면 <지식의 반감기>라는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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