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즐겨보는 드라마가 하나 있다. 바로 안방가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JTBC의 금토 드라마 <부부의 세계>다.
<부부의 세계>는 배우 김희애 (지선우)와 박해준 (이태오) 주연의 드라마로, 한 가정의 이혼 과정에서 여러 등장인물들 사이의 악연이 얽히고 섥히면서 발생하는 막장 에피소드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다양한 등장인물들 중, 김희애 (지선우)와 박해준 (이태오)의 사춘기 중학생 아들 역할로 나오는 전진서 (이준영)에 대해서는 시청자들의 평이 갈린다. 네티즌들의 리뷰를 보면 일부 시청자들은 엄마의 마음을 찢어놓는 중2병 사춘기 아들의 철 없고 이기적인 행동에 분노하기도 하고, 반대로 부모의 불화 속에서 큰 상처를 입은 준영이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확실한 것은 준영이는 안그래도 심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사춘기 중학생이라는 것이다.
사춘기를 겪는 10대 시기를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시기는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으로서 신체적으로도 큰 변화를 겪는다. 또한 성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이도 아닌 주변인의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춘기에는 감수성이 예민해지고, 민감함이 극대화되면서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병은 다름아닌 '중2병'이라고 우스갯소리처럼 말하기도 한다.
경험적으로 볼 때 청소년기는 새로운 감각을 추구하는 행동, 더 극단적인 위험 감수, 자기 몰두, 또래 압력에 대한 민감성 등과 연관이 있다. 이런 특성은 모든 시간과 문화에 관찰되어 왔다.
- <운명의 과학>, 한나 크리츨로우, p62 -
심지어 철학자 루소 역시 질풍노도의 사춘기 시절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기도 했다.
"열어섯 살이 되면 청소년은 고통이 무엇인지 안다. 그 자신도 고통을 받아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 역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은 거의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준영이를 포함한 10대의 청소년기 시절 사춘기 학생들은 왜 중2병에 걸리는 것일까?
인간의 모든 행동과 의사결정을 관장하는 기관이 뇌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신경생물학과 뇌과학을 통해 그 단서를 어렴풋이나마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의 신경 생물학은 전형적인 10대의 행동을 결정하는 절대적 열쇠이며, 아기의 초기 시절에 일어나는 일만큼이나 흥미진진하고 역동적이다. 발달 과정과 호르몬의 영향력이 서로 공모해서 뇌와 육체 양쪽 모두에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 충동성, 또래 압력에 대한 민감성, 극심한 자의식 등이 생겨난다.
- <운명의 과학>, 한나 크리츨로우, p63 -
최신 뇌과학 분야의 다양한 연구들을 통해 인간의 운명과 자유의지에 대해 파헤치는 명저 <운명의 과학>에서는 10대 청소년기 시절에 발생하는 뇌의 커다란 변화를 2가지 차원에서 설명한다.
![]() |
|
먼저 청소년기에는 의사결정과 사회인지, 자기인지 능력을 관장하는 앞이마겉질이라는 뇌의 부위에서 큰 변화가 나타난다.
청소년기에 큰 변화를 거치는 뇌 영역 중 하나는 이마 바로 뒤에 자리 잡고 있는 앞이마겉질이다. 이 영역은 의사결정, 미래 계획, 부적절한 행동의 억제, 불필요한 위험 감수 행동의 예방, 타인을 이해하는 등 소위 사회인지와 자기인식 등을 비롯한 수많은 고등 인지 기능에 관여한다. 그래서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뇌 영역이고, 그와 관련된 행동의 목록을 보면 청소년기 행동에서 이 영역이 맡는 역할이 대단히 중요할 가능성이 높다.
- <운명의 과학>, 한나 크리츨로우, p63 -
우리의 뇌에는 뉴런이라고 불리우는 수백억개에 달하는 신경세포들이 있는데 그 숫자는 우주에 있는 별의 숫자에 맞먹는 수준이다. 이 신경세포들은 끊임없이 회로처럼 서로 연결되면서 일종의 배선(writing up)을 형성한다. 하지만 모든 회로가 영구적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뇌는 다양한 경험의 누적을 통해 어느 회로를 유지하고 어느 회로를 지울 것인지를 결정하는 가지치기 (pruning) 과정을 거친다. 즉, 뇌로 하여금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측면들만 걸러내는 작업을 통해 지각을 조정하고 효율성을 유지하는 과정인 것이다.
특히 최근의 연구들에 따르면 청소년기 시기에 이러한 배선과 가지치기 과정이 다른 시기보다 훨씬 큰 규모로 가속화되며 이루어진다는 것이 밝혀졌다. 특히 앞서 말한 고등 인지기능을 관장하는 앞이마겉질에서 이러한 작업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그것도 대량으로 이루어진다. 말 그대로 '질풍노도'의 시기인 셈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사춘기 시절에는 의사결정, 미래 계획, 부적절한 행동 억제, 불필요한 위험 감수 행동의 예방, 타인을 이해하는 공감능력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으며 일정한 일관성을 갖기 어려운 것은 뇌과학적으로 볼 때에도 당연한 것이다.
청소년기가 시작될 즈음 뇌는 이미 자신의 네트워크 안에 잘 확립된 신경 고속도로가 가동 중이지만 추가적으로 계속해서 연결을 만들어 가는 것과 동시에 잘 사용되지 않는 신경로를 더 많이 가지치기 하기 시작한다. 10대의 앞이마겉질은 그런 시냅스 가지치기가 대량으로 일어나는 장소다. 이 뇌 영역은 자기가 배워 왔던 내용을 가다듬고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축해 나가는 일을 동시에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 대단히 역동적인 시기에는 앞이마겉질에서 정보가 처리되는 방식과 보상회로를 비롯한 다른 심부 영역의 정보 처리 방식 사이에 불일치가 발생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 결과로 청소년은 즉각적인 만족과 보상에 대단히 예민해지지만 충동 조절 능력과 의사 결정 능력은 아직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상태가 된다. 평균적으로 10대들은 안전책을 강구하지 않고 즉각적인 황홀감을 좇아 행동할 가능성이 크다.
- <운명의 과학>, 한나 크리츨로우, p64 -
두번째로 청소년기의 뇌에서는 회백질이 줄어들면서 일부가 백질의 확장으로 대체되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회백질은 뉴런의 신경세포체와 가지돌기, 무수신경돌기가 밀집되어 있는 부위인데, 뇌의 주된 활동들이 이 곳에서 이루어진다. 반면 백질은 회백질 사이를 연결하는 일종의 정보전달 통로 역할을 한다. 이처럼 회백질이 백질로 대체되는 과정을 거치면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뇌가 정보를 처리하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된다. 쉽게 말해 뇌가 업그레이드 되는 것이다.
청소년의 뇌 발달에서 중요한 측면이 한 가지 더 있다. 10대 시절에는 뇌의 회백질이 줄어든다. 앞이마겉질에서는 무려 17퍼센트나 줄어든다. 회백질은 중추신경계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다. 이곳은 시냅스 접합이 일어나는 대량의 수상돌기 가지와 신경세포의 세포체, 그리고 거기에 동반되는 지지세포들이 자리 잡고 있는 곳으로 우리 뇌의 대부분을 형성하며 척수를 타고 아래로도 이어진다. (...) 이 손실을 잉여 시냅스의 가지치기만으로는 설명할 수는 없다. 회백질의 일부는 백질의 확장으로 대체된다. 백질은 신경세포의 긴 회색 실린더 모양 구조물인 축삭돌기 둘레를 감싸서 코팅하고 있는 지방을 일컫는 이름이다. 이 코팅은 축삭돌기의 절연을 도와주어 전기 신호가 뉴런에서 뉴런으로 더 빠르고 온전하게 전달될 수 있게 해준다. 10대의 뇌 발달 과정에 일어나는 다양한 과정들이 모두 합쳐져서 청소년 커넥톰의 개선을 도와 자잘한 수많은 가지로 구성되어 있던 시스템을 그 보다 숫자는 적지만 고속의 신경로를 갖춘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 해준다.
- <운명의 과학>, 한나 크리츨로우, p65 -
앞서 살펴보았듯 청소년기의 뇌에서는 대공사가 일어난다. 요약하자면 앞이마겉질에서 대량의 가지치기가 일어나고, 회백질이 백질로 대체되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자기인식, 사회인지, 공감능력에 있어서 불안정한 시기를 거칠 수밖에 없다. 소위 말해 중2병에 걸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작업을 통해서 청소년기의 뇌에서는 효율화가 진행되고, 외부에서 유입된 정보를 보다 빠르게 처리하고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일관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성인의 뇌로 업그레이드 된다.
유니버시칼리지 런던의 인지신경과학 교수 사라-제인 블랙모어는 '청소년기는 자의식이 가장 강하고 또래 압력에도 가장 민감한 시기일지도 모르지만, 이런 것들 모두 고유의 정체성을 구축해 가는 과정의 일부분이고, 이것이 10대 시절의 핵심과제'라고 말한다.
10대 시절의 중2병은 사춘기 청소년 자신에게도 당연히 괴로운 과정이다. 물론 그들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 또한 이로인해 큰 고통을 겪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명의 과학>의 저자 한나 크리츨로우는 앞서 설명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이는 '고통스러울지라도 필수적인 학습시기'라고 말한다.
이처럼 중2병이라는 열병은 사춘기 시절 뇌의 변화로부터 비롯된다. 하지만 이 시기에 뇌에서 이루어지는 대공사를 통해 우리는 더욱 성숙해지고 지혜로워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빅히스토리란 무엇인가? (feat.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 (0) | 2020.07.10 |
---|---|
실패할수록 더욱 강해지는 '다이슨(dyson)' (feat. 실패, 히든애셋, 굴절적응) (0) | 2020.05.21 |
그 유명한 '마시멜로 실험'이 틀렸다고? (feat. 사회과학 연구의 신뢰성과 지식의 발전과정) (1) | 2020.05.12 |
현업 마케터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이것’! (데이터 마케팅이 중요해지는 이유) (0) | 2020.05.08 |
잠을 자는 동안 뇌의 노폐물이 청소된다? (글림프 시스템) (1) | 2020.0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