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부자의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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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부터 턴테이블을 구매하고 LP를 모으기 시작했다.

코로나 이후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소비의 카테고리가 변하면서 예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분야에 지갑이 열리고 있는 셈이다. 작년 말 우연히 Soundlook 에서 구매한 스피커 일체형 턴테이블에서 시작해서 현재는 오디오 테크니카 AT-LP60BT를 쓰고 있다. 소위 말하는 알판 (LP)도 어느덧 20~30개 가량 모았다. 또 턴테이블과 LP를 안전하게 수납하면서도 세련된 인테리어 소품으로 사용할 장을 짜맞추기도 했다. (이제 스피커만 사면 되는데 일단은 스피커의 명가 하만카돈의 블루투스 스피커를 사용하고 있다. 조만간 제네바 스피커를 살 예정)

 

아무튼 아무리 좋은 장비를 가지고 있어도 일단 LP가 있어야 한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LP의 종류와 가격은 싼 것은 5천원에서 시작해서 비싼 것은 몇 백만원에 이르기까지 넓은 가격대를 아우른다. 자주 들르는 LP 샵 사장님의 조언에 따르면 일단 초보시절에는 최대한 많은 알판을 모으면서 자신의 취향을 찾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나도 LP를 모아가면서 어느정도 나의 취향의 범주를 보다 와이드하고 딥하게 탐색해나가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일반적으로 알판 하나 당 평균 3만원 정도의 금액인데 막 살 수는 없다. 내 나름대로 구매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몇 가지 기준이 생겼다. 여러가지 기준들이 있으나 그 중 하나는 나의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내가 좋아했던 그 앨범들'을 구하는 것이다.

 

 

참 신기하게도 몇 십번, 몇 백번을 돌려들은 음악이라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트렌드가 바뀌고 취향이라는게 변하면서 까마득히 잊고 사는 음악들이 있다. 그러다가 지나가던 길에서 혹은 라디오에서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오면 머리가 띵해지며 아련한 그 때의 기억들이 스르륵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그런 음악들이 있다.

 

 

오늘 소개할 바이닐, Eluphant Bakery는 내게 바로 그런 앨범이다.

아티스트는 이루펀트 (Eluphant), 키비와 마이노스로 이루어진 프로젝트 그룹이다. 이 아티스트의 음악을 자주 들었던 것은 바야흐로 2000년대 고등학생 시절 때였다. 당시에는 MP3나 PMP에 음원을 다운받아서 줄 이어폰을 꼽고 음악을 듣던 시기였다. 야자시간이나 스쿨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동안 참 많이도 돌려들었던 그 앨범. 이 앨범을 돌려듣다 보면 어느순간 고등학교 시절에 친했던 친구들의 얼굴들이 떠오르고, 그 당시 이 노래를 들으며 내가 했던 고민들이 하나 둘 생각난다.

 

이 앨범의 장르는 K 힙합이다. 사실 일반적으로 힙합이라 하면 강한 드럼 비트에 묵직한 사운드, 공격적인 가사들이 주를 이루는 딥한 장르로 생각하기 쉽다. 장르라는 카테고리도 열어보면 그 스펙트럼이 매우 넓지만 이 앨범은 장르 매니아들이 아니더라도 다소 편하게 접근하기 쉬운 앨범이다. 힙합 저널리스트 김봉현의 평가를 차용하자면 이 앨범은 한국 힙합에 새로운 카테고리를 더한 것 같다. 그만큼 그동안 "힙합은 매니악한 장르야. 이러한 장르가 힙합이고 저런건 힙합이 아니야."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깨뜨리는 앨범이었다. 일상에서 맞딱드리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순수한 감수성으로 풀어내는 스토리텔링이 돋보인다. 특히 센스있는 가사와 키비의 하이톤, 마이노스의 중저음톤이 특유의 편안한 랩보컬 사운드로 귀와 마음을 간지럽혀서 이 앨범이 추구하는 방향성과 잘 맞아 떨어진다. 그래서 사춘기 고등학생 시절 이 앨범을 그렇게 많이 들었었는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은 SIDE A의 MR.심드렁이라는 곡이다. 친구 두 명이 나란히 앉아 술을 마시며 자신이 요즘 가지고 있는 고민거리들을 천천히 풀어내고 들어주는 그런 내용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것 아닌 것들에 목숨을 걸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들이 겹쳐지는 것 같다. SIDE B의 꿈의 터널이라는 곡도 새롭다. 어린 시절부터 키우던 애완견이 세상을 떠나고 다 커버린 주인에게 그 때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신선한 컨셉이다. 나 역시 고등학생 시절부터 키우던 강아지가 어느덧 노견이 되었는데 지금 이 노래를 들으니 가슴이 뭉클하고 아리는 느낌이다. SIDE B의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딩은 이 앨범의 대표 곡이다. 제목이 특이하다. 무라키미 하루키의 수필집에서 모티브를 따왔는데, 졸업식 날 지난 학창시절을 회고하는 내용의 가사다. 당시 이루펀트라는 그룹이 추구하는 음악적 방향성과 서정성이 가장 잘 묻어나는 곡이다. 무엇보다 정기고가 피쳐링한 곡인데 초기 시절의 정기고 보컬사운드가 잘 어우러지는 곡이다.

 

 

이 바이닐은 2022년 3월 7일에 예약반으로 발매되었다.

500개 한정반이고 나처럼 과거를 추억하려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기에 구매가 꽤나 힘들 것이라고 생각되었는데 운좋게 쉽게 성공했다. 내가 구매한 곳은 SOUNDS GOOD STORE 였고 오픈 이후 30분? 정도 뒤에 매진되었던 것 같다.

 

SOUNDS GOOD STORE (soundsgood-store.com)

 

그리고 엊그제인 3월 24일에 드디어 집으로 배송이 되었다.

일단 바이닐 구성이 알차다. 이루펀트 스티커와 김봉현 저널리스트가 쓴 추천사가 들어있다.

가사집도 CD 사이즈로 제작되어 앨범 발매 당시의 복각 분위기가 물씬 난다.

무엇보다 투명 핑크반이 너무 예쁘다. 그 자체로 인테리어가 되는 듯한 느낌...

이번 바이닐의 커버는 리이슈되면서 '베이커리'라는 앨범 제목과 어울리는 아트웍으로 리뉴얼됐다. 속비닐 역시 질이 굉장히 좋은 비닐 사이즈에 각종 빵 일러스트가 프린팅 되어 있다.

 

 

 

사운드는? 음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음원사이트에서 듣는게 더 좋게 느껴진다.

애초에 베이스가 강한 타입의 곡들도 아니고 마이노스의 보컬 사운드가 중저음이기 때문에 LP로 들었을 때는 약간 묻히는 느낌도 든다. 그래도 그 당시의 나를 추억할 수 있고, 이렇게 알찬 구성에 이쁜 알판이라면 충분히 소장가치가 있지 않은가?

 

 

발매 정가는 44,500원. 개인 중고장터에 올라오는 미개봉반들은 대략 6~7만원 정도로 리셀가가 형성되는 듯 하다.

아무쪼록 잘 구매한 앨범 중 하나.

 

 

수록곡 정보

 

 

SIDE A

Ladies and gentlemen

그날 밤, 셋이서, 그곳에 서서 (Feat. 라임어택)

공명

Mr. 심드렁

Ophilia, Please show me your smile (Feat. 팔로알토, 샛별)

귀 빠진 날: 생일 축하해

당신이 점점 궁금해집니다

Pink polaroid (feat. 있다)

 

SIDE B

꿈의 터널 (Feat. 강태우 Aka Soulman)

원님비방전 (Feat. 인피니트플로우, 더콰이엇)

Mr. 심드렁 (Remix)

Pink polaroid (봄날의 곰 Mix)

힘 빠진 날 (Feat. 더콰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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