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부자의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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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친한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날씨도 꾸리꾸리한데 집 앞에서 소주나 한 잔 하자는 것이다.

 

 

 

 

너무 피곤해서 얼른 자려고 누워있었는데, 친구의 목소리가 빗소리처럼 축 쳐져서 심상치 않은 눈치였다. 귀찮지만 친구 좋다는게 무엇이겠는가! 헝클어진 머리에 캡모자를 푹 눌러쓰고 힘든 몸을 겨우 일으켰다. 사실, 친구의 목소리가 조금만 하이톤이었어도, 헛소리 하지 말고 들어가 발닦고 자라고 했을 것임은 비밀이다. 나도 금요일 밤을 이렇게 보내기 아까웠는지라, 못이기는 척 추리닝에 패딩 하나 걸치고 집 앞 24시 해장국 집으로 나섰다.

 

 

 

 

이미지 출처: https://blog.naver.com/himkingkr2/40192160780

 

 

뼈해장국에 소주를 한 병 시켰다. 시덥잖은 농을 서로 몇 번 주고 받고, 소주를 연거푸 몇 잔 주고 받았다. 날씨탓인가? 부실한 안주 탓인가? 아니면 그냥 빗소리에 젖은 기분 탓인가? 취기가 스물스물 오르려 하는 순간, 친구가 비장한 표정으로 불현듯 물었다.

 

"야, 너는 행복하냐?"

 

감자뼈를 발라먹다가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싶기도 하고, 삼류 드라마에 나올 법한 오그라드는 대사에 어이가 없기도 해서 멀뚱멀뚱 친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내 대답을 기다리느라 소주잔을 한 손에 들고 마실까 말까 멈칫멈칫 하는 친구의 손이 거슬렸다. 친구가 민망해할까봐 얼른 대답해주려고 입을 떼다가 머뭇거렸다. 뻔한 질문인데 쉽게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불행해서가 아니었다. 그냥 갑자기 '행복'이라는 단어가 무척이나 고상하고 무겁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짧은 순간, 몇 번이나 속으로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이리 저리 생각하느라 취기가 가시는 듯 했다.

 

 

이처럼 행복에 대해 정말 깊은 논의를 다루는 책이 한 권 있다. 바로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자, 서울대학교 행복 연구센터 센터장인 최인철 교수의 <굿라이프>이다. 이 책에서 최인철 교수는 우리가 '행복'을 거창한 것으로 오해하는 주된 이유가 그 단어의 어원에서 비롯한다고 말한다.

 

 

 

사실상 행복에 대한 오해는 행복이라는 한자에서 비롯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행복: 1-복된 좋은 운수)사전에 제시된 행복의 첫 번째 정의는 '우연히 찾아오는 복'이다. 이 정의는 우연과 복이라는 두 가지 특성을 행복의 핵심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두 가지는 우리가 행복이라고 부르는 마음 상태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런 마음 상태를 가져오는 조건들의 특성에 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행복이라는 단어는 복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특별한(extraordinary) 일이 굳이 애쓰거나 기대하지 않았는데도 일어나는 우연성을 말하고 있을 뿐, 행복이라는 주관적 경험 자체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어떤 힌트도 제공해주지 않는다. 행복은 행복 경험 자체보다는 행복의 조건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 <굿라이프>, 최인철, 21세기 북스, p30 -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렇다. "인생이 행복하느냐"는 친구의 가벼운 질문이 꽤나 무겁게 느껴졌던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다. 우리는 행복이라는 것을 만족스럽고 안녕감을 느끼는 심리적 상태나 경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복이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하는 특별한 일, 우연한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그것을 행복이라고 스스로 인식하는 것이다.

 

최인철 교수는 행복이라는 어원에 기인하는 혼동스러운 정의를 다른 단어로 대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되려 행복의 의미를 전달하기에 더욱 적합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중국 유교 경전 <대학>에 나오는 개념, '쾌족'을 그 대체어로 선택한다.

 

남의 시선과 기대에 연연하지 않고 내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사는 삶의 자세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언제나 마음이 만족스럽다. 그 만족의 상태를 자겸이라고 한다. 겸은 만족스러운 것이다. 남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 만족스러운 상태를 바로 쾌족이라 한다. (고전 연구자 박재희 박사가 2012년에 쓴 칼럼 '행복에서 쾌족으로!'를 본 책에서 인용한 내용임)

- <굿라이프>, 최인철, 21세기 북스, p33 -
쾌족은 글자 그대로 기분이 상쾌하고 자기 삶에 만족하는 심리상태를 지칭한다. 행복이라는 단어보다 훨씬 더 정확하고 직접적으로 행복의 심리적 상태를 표현하고 있다.

- <굿라이프>, 최인철, 21세기 북스, p34 -

 

 

이렇게 '쾌족'이라는 개념으로 '행복'이라는 단어를 바꿔 말하면, 인식의 관점이 놀랍게도 현실적이고 가벼운 일상의 영역으로 탈바꿈한다. 커다란 구름에 가려 저 멀리 떠있는 것처럼 느껴지던 것이, 내가 발딛고 있는 땅 한 가운데로 툭 하고 떨어지는 느낌이다. 고상하고, 위대하고, 특별해 보이고, 높아만 보이던 것이 내 눈높이에 들어서면 쉽게 잡아챌 수 있게 된다. '행복(쾌족)'이라는 것이 그저 기분이 상쾌하고 만족스러운 심리 상태라면,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행복(쾌족)'한 사람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떄, 행복한 감정을 경험하기 위해서 '행복'이라는 어떤 특수하고 개별적인 감정을 경험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경직된 사고가 우리의 행복을 억압했을 수도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만족하고 이미 감사하고 이미 고요하고 이미 즐거움녀서도, 여전히 행복이라는 파랑새 같은 감정을 경험해야만 한다는 숙제를 안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 <굿라이프>, 최인철, 21세기 북스, p38 -

 

그렇다. 최인철 교수의 말처럼 행복을 이렇게 이해한다면, 행복은 철저하게 일상적인 것이다.

 

예컨대, 이른 새벽 출근하려고 차 시동을 걸었는데 한동안 잊고 지냈던 좋아하던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때, 한 겨울 찬 바람을 뚫고 내리쬐는 따스한 햇살이 피부에 닿을 때, 빨래를 널다 코 끝을 간지럽히는 포근한 세제 냄새가, 공원에서 날 보고 꼬리를 흔들며 달려오는 작은 강아지의 숨소리가, 주말 아침인 것을 모르고 알람이 울려 깼는데 휴대폰 화면에 떠있는 '토요일'이라는 세 글자가, 바쁜 일상 속에서 오랜만에 보는 친구 얼굴 등. 이 모든 것이 쾌족이고 행복이다.

 

사실 우리는 행복을 대단한 것으로 생각해서, 행복하지 않다고 착각하는 것일수도 있다.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이며 20세기를 대표하는 정신의학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그녀의 제자 데이비드 케슬러는 책 <인생수업>에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마지막으로 바다를 본 것이 언제였습니까? 아침의 냄새를 맡아본 것은 언제였습니까? 아기의 머리를 만져 본 것은? 정말로 음식을 맛보고 즐긴 것은? 맨발로 풀밭을 걸어 본 것은? 파란 하늘을 본 것은 또 언제였습니까? 이것은 다시 얻지 못할지도모르는 경험들입니다. 우리 모두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한 번만 더 별을 보고 싶다고, 바다를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언제나 정신이 번쩍 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다 가까이 살지만 바다를 볼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 별 아래에 살지만, 가끔이라도 하늘을 올려다보나요? 삶을 진정으로 만지고 맛보고 있나요? 평범한 것 속에서 특별한 것을 보고 느끼나요? (중략) 이번 생과 같은 생을 또 얻지는 못합니다. 당신은 이 생에서처럼, 이런 방식으로 이런 환경에서, 이런 부모, 아이들, 가족과 또다시 세상을 경험하지는 못합니다. 당신은 결코 다시 이런 친구들을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다시는 이번 생처럼 경이로움을 지닌 대지를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바다와 하늘과 별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지금 그들을 보러 가십시오.

- <인생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데이비드 케슬러, 이레, p260 -

 

이러한 질문에 대해 하나씩 생각해보면, 실상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핸드폰이나 리모컨을 손에 쥐고서, 이를 모르고 한참을 찾아 헤매다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느즈막히 깨닫는 경험을 누구든 한 번씩은 해봤을 것이다. 그 때 스스로가 얼마나 바보같았는지 생각하며 헛웃음 치기도 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쩌면 행복을 이미 손에 쥐고서, 한참을 엉뚱한 곳에서 아등바등 찾아 헤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그 친구에게 "행복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시 한편을 문자로 적어 보내주려고 한다.

 

<조용한 일 - 김사인>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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