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새로이 살게 될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한동안 여기저기를 수도 없이 쏘다녔다.
그동안 평생을 부모님 슬하에 살았기 때문에, 새로이 둥지를 틀 집을 알아보는 것은 꽤나 막막하고 어려웠다. 퇴근을 하고 나면 평일, 주말할 것 없이 부동산을 들락날락 거렸다. 그렇게 몇 날 몇 주, 몇 달을 시간이 날 때마다 공인중개사 사장님들을 찾아가 물어보고, 물어보고, 또 다시 전화로 물어보고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무엇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좋은 집은 어떤 조건을 가지고 있는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여러 곳의 매물을 살펴보고, 부동산 고수들을 쫓아다니며 임장을 다니면서 그들이 주고 받는 이야기들을 어깨너머로 배울 수 있었다. 그렇게 나름의 통밥(?) 같은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등 뜨뜻한 방에서 머리를 대고 대자로 누울 수 있는 집이면 어떤 집이든지 좋게 보였다. 그러다가 매매가와 전세가를 주변 시세와 비교해가며, 그저 가격이 합리적으로 괜찮아보이면 어떤 집이든지 다 좋게만 보였다. 그렇게 몇 차례 집을 돌아 다니다보니 내부 조향도 살펴보고, 전망도 살펴보고, 장이나 천장 혹은 화장실, 수도관에 흠이 있는지 등등을 꼼꼼히 살펴봐야 할 기준이 생겼다. 조금 더 지나서는 부동산 책들과 인터넷을 검색해가며 인근 지역의 상권규모와 세대수를 따져가며 비교하기 시작했고, 교통 편의성, 개발호재 등의 정부 시책도 고려하게 되었다. 종국에는 이렇게 많은 정보들을 종합해가면서 무엇이 신호이고 무엇이 소음인지에 대한 개인적인 기준을 바탕으로, 그저 소문에 휘둘리지 않고 나의 기준과 조건으로 어느 정도 분별해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맞건 틀리건 나만의 판단 기준이 생겼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부동산 투자자나 전문가는 아니다. 그럴 감냥도, 능력도 되지 않는다. 그저 나는 그저 평생 써온 돈보다 더욱 큰 돈을 한번에 지출하는게 걱정되고 두려웠다. 그렇다보니 정성을 기울일 수 밖에 없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까지 이 집, 저 집을 몇 번씩이나 가보고, 인근주변을 돌아다녔다. 또한 집 내부에 들어가서도 세세한 것 하나 하나 들여다보고 검토해보는 것이 당시의 일상이었다.
이처럼 '독서'도 '집 보듯' 해야한다.
옛 성현들의 글에서 독서에 대한 글귀들과 문장들을 각각의 소주제로 모아 평역, 편찬한 한양대학교 국문과 정민 교수님의 책 <오직 독서 뿐>에는 이런 글이 나온다.
독서란 비유컨대 집 구경과 같다. 만약 바깥에서 집을 보고 나서 '보았다'고 말한다면 알 길이 없다. 모름지기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하나 보아, 방은 몇 칸이나 되고, 창문은 몇 개인지 살펴야 한다. 한 차례 보고도 또 자꾸자꾸 보아서 통째로 기억나야 본 것이다. (양응수, <독서법>)
- 오직 독서 뿐, 정민, 김영사, p95 -
본 글을 쓴 '양응수'는 조선후기의 이름난 유학자로 권집과 이재 선생의 문하에서 학문을 공부하여 <백수문집>을 써낸 학자다. 평생을 공부에 전념한 대학자의 이 글에는 짧지만 날카로운 인사이트가 담겨져 있다.
나름대로 다방면의 책을 넓고, 깊게, 많이 읽으려 노력한다고 자부했던 나도 이 문장 앞에서 한 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최근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쏟았던 정성으로 책을 대하고, 방은 몇 칸이나 되고, 창문은 몇 개인지 꼼꼼히 살펴보듯 책을 읽으면 책을 통해 뭐라도 되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인의 말씀은 천 송이의 꽃과 같다. 멀리서 바라보면 모두 보기가 좋다. 단적으로 정말 좋은 곳을 보아야 비로소 얻은 것이다. 모름지기 힘을 쏟아 자세히 보아야 한다. 공부는 단지 자세히 보는 데 달렸을 뿐 다른 방법이 없다. (양응수, <독서법>)
- 오직 독서 뿐, 정민, 김영사, p97 -
그러니 우리는 책을 부동산 보듯 해야 한다. 그만큼 꼼꼼히, 철저히, 조심스럽게,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따져가며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부동산도 공부도 단지 자세히 보는 데 달렸을 뿐, 별다른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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