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연히 어머니가 보고 계시는 TV 프로그램을 보았다. 바로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 2 (살림남2)'였다. 이 방송은 살림을 하는 스타 남편들의 일상 모습을 관찰하는 관찰예능이다.
이 방송의 출연진 중 특히 재밌게 본 부부는 여배우 강성연씨와 피아니스트 김가온씨 부부다. 강성연씨는 드라마, 영화 등 연예계 다방면에서 톱여배우로 활약중인 배우이다. 그녀의 남편인 김가온씨는 서울대 작곡과를 거쳐 버클리, NYU에서 음악공부를 한 뒤 재즈 피아니스트로 활발히 활동중인 음악가이자 교수다.
하지만 이처럼 화려해보이는 사회에서의 모습과는 달리,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사정은 달라진다.
그들은 8년차 부부로서 장난꾸러기 연년생 형제의 엄마, 아빠다.
현실 속에서 화려한 스타들도 피할 수 없는 것이 '가사'와 '육아전쟁' 그리고 '자녀 교육'이다.
이 부부의 치열한 일상생활을 보면서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었는데 주된 내용은 아래와 같다. 한창 장난끼 가득할 나이의 아들이 싸인펜으로 냉장고에 낙서를 한 것을 목격한 것. 이 사태에 대한 둘의 반응은 확연히 달랐다. 강성연씨는 "낙서를 하면 안되는 곳에는 절대로 낙서해서는 안된다. 혼내야 할 것은 따끔히 다그쳐야 한다"라는 입장이다. 반면에 김가온씨는 "아이의 창의성과 예술성을 부모가 막아서는 안된다. 오히려 이번 낙서는 여태껏 그린 낙서 중에 가장 구조적인 작품이라 할만하다."라는 식으로 말하며 서로 대립한다.
방송에서는 이처럼 둘의 교육철학과 육아방식의 차이로 두 부부가 서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소 논점과 엇나간 생각일 수 있지만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아이의 창의성을 높이려면 어떻게 교육하는 것이 바람직할까?'라는 방향으로 사유의 초점이 모아졌다.
모든 부모는 김가온씨처럼 자신들의 자식이 스티브 잡스처럼 성장하길 바란다. 다시말해, 아이들의 창의성을 어떻게 개발시켜야 하는지, 어떻게 교육시켜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하지만 고민과 걱정과는 달리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의 창의성 교육방법에 대해 공부하지 않는다. 그저 피같은 돈을 들여 어린 나이의 유아 시기부터 아이들을 각종 학원에 보낼 뿐이다.
이러한 부모들을 위해 추천하고 싶은 책이 한 권 있다. 바로 김용규씨가 쓴 <생각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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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저자는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과 튀빙겐 대학에서 서양 문명의 두 기둥인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정통 인문학자다. 이 책은 기원전 6세기부터 5세기 사이에 가히 '가장 창의적인 시대'라고 불리울 수 있는 그리스 시대에 주목한다. 그리스 시대는 인류 문명을 탄생시킨 역사상 가장 탁월하고, 혁신적인 생각의 도구가 탄생한 시기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상세히 소개한다. 바로 '창의성을 개발시킬 수 있는 교육방법'을 다루고 있는 셈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교육방법론 중, 김가온, 강성연 부부의 '냉장고 낙서 사태'와 관련된 내용이 있다. 바로 '그림 그리기'가 아이의 창의성 개발에 어떤 효과를 미치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김용규씨는 책 <생각의 시대>에서 메타포라(은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림 그리기'가 유아교육에 있어 왜 중요한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뛰어난 관찰자들(이 가운데는 저명한 자연과학자, 사회학자 뿐 아니라 시인, 소설가, 무용가와 같은 예술가들도 들어 있다)은 단순히 글로 기록하거나 사진을 찍는 것 외에 드로잉(drawing), 곧 그림 기록의 중요성을 입을 모아 강조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상을 직접 그리는 과정에서 더욱 세밀한 관찰과 풍부한 발견, 그리고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루트번스타인 부부는 윌리엄 블레이크, 괴테, 새거리, 체스터튼, 토머스 하디, 브론테 자매들, 레르몬토프, 알프레드 테니슨, 조지 듀 모리에, 시어도어 화이트, 톨킨, 헨리 밀러, 에드워드 커밍스 등과 같은 저명한 시인과 소설가들이 그림이나 조소와 같은 시각예술을 공부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화가이자 소설가인 윈덤 루이스가 "데셍기술은 전적으로 과학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소설을 쓰는 일에도 도움이 됩니다."라는 말을 덧붙여 놓았다.
- <생각의 시대>, 김용규, 살림, p211-
요약하자면 그림 그리기는 분야를 막론하고 아이의 세밀한 관찰력과 발견, 그리고 깊이있는 이해를 자극하기 위한 창의성 교육의 핵심이라는 내용이다.
그림 그리기가 관찰기능을 향상시킨다는 것은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오래 전부터 널리 알려져 있다. 루이 파스퇴르, 조지프 리스터, 프레더릭 벤팅, 찰스 베스트, 앨버트 마이컬슨, 헨리 브래그, 메리 리키, 데스몬드 모리스, 콘라드 로렌츠 등과 같은 위대한 과학자들이 모두 공식적인 미술교육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미 연구로 명성을 얻은 하버드 대학교의 생물학 교수 에드워드 윌슨은 관찰에서 그림 그리기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그림을 그리면 사진을 찍을 때보다 훨씬 더 잣니이 관찰하는 대상에 직접적으로 몰입하게 된다. 그림은 자신이 본 것을 재창조하는 것이지 단순히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 <생각의 시대>, 김용규, 살림, p212-
하버드 대학교의 생물학 교수 에드워드 윌슨의 위와 같은 말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이의 내면에 들어선 세계를 재창조 하는 것이지 단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아이의 창의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앞서 말한 강성연, 김가온 부부의 '냉장고 낙서 사태'에 있어, 김가온씨의 의견에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김가온씨가 아이의 창의성 개발에 있어 '그림 그리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는 100% 동의한다. 그의 탁월한 유아 교육 방법에 대한 인사이트에 되려 놀랐다.
아이의 창의성을 높여주고 싶은가? 우선 아이에게 스케치북과 사인펜을 사준 뒤 마음껏 낙서하게 하자! (냉장고에 낙서하지 않도록 말이다)
그리고 모든 부모들은 교육에 대한 책을 사서, 아이가 그림을 그릴 동안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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