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부자의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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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같은 아이리버 MP3 세대라면 장담컨대 싸이월드 계정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아니라고?" 에이, 거짓말.

 

전국민이 겪는 지독한 열병이 있다. 나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럴 것이다. 이름하야 바로 그 무섭다는, 중2병.

당신은 학창시절에 엄마 몰래 문화상품권을 사서 PC 앞에 앉아, 한참동안 도토리로 미니홈피 BGM을 골라본 경험이 한번 쯤은 있지 않은가? 알다시피 그때는 지금처럼 쉽게 음악을 듣거나 소유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나의 감정을 대변할 수 있는 곡이나 남이 모르는 고고한 아티스트의 숨겨진 명곡은 나를 대변하는 아이덴티티 그 자체였다. 그 때 싸이월드 일촌들을 파도타며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 기억을 되짚어보면, 그 당시 우리들의 계정 간판에 걸린 BGM Best 3는 '키네틱 플로우-몽환의 숲', '넬-멀어지다', 'Y-프리스타일'이었다. 지금도 가끔씩 운전을 하다가 라디오에서 이 노래들이 우연히 흘러 나오면 잊고 살았던 나의 청년기를 잠시나마 마주하게 된다.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라고 했던가? 그 당시 Z세대라고 불리우던 우리들은 각자 다른 그림을 그렸지만, 같은 도화지에 같은 물감을 썼다. 그래서 각자의 청년기의 향수들은 미묘하게 닮아있다.

 

 

 

그런 의미에서 혹시 2017년 Melon의 브랜디드 필름 '고스란히', '마니또', '우리 지난 날의 온도'를 아는가?

모른다면 잠시 시간을 내어 아래 영상을 꼭 보시기를 추천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jebK50mID4A

 

영상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 영상 곳곳에는 정말 말도 안되는 디테일이 숨어있다. 친구들과 시내에는 일본에서 직수입한 스티커 사진 기계가 있다는 첩보를 듣고, 방과 후 얼른 뛰어가 줄을 서서 기다렸던 기억들, 옹기종기 모여 얼굴을 붙인 채 찍은 사진 중 서로 잘 나온 조각을 가지겠다며 가위질을 하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책상에 엎어져 자다가도 쉬는 시간이면 벌떡 일어나서 매점으로 뛰어가 사먹었던 데미소다 캔. 야자 시간마다 서로 빌려가며 들었던 각자의 취향을 대변하던 MP3 플레이어, 앞서 말했던 미니홈피까지... 이 영상에는 이처럼 정말 말도 안되는 사소한 디테일이 우리의 지난 추억을 자극한다.

 

그뿐이랴? 마케터의 입장에서는 브랜딩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은연 중에 드러내는 것이 프로페셔널의 조건이다. 단, 잘 설계한 기획일수록 마케팅 하고 있다는 티가 나면 안된다. 무드를 깨니까. 잠재적 고객들이 은연중에 브랜드를 인지하게 되고 좋은 기억을 뇌리에 심어놓는 것. 그것이 마케터의 일이다. 이 영상은 사실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멜론'의 브랜드 정체성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영상이다. 자, 눈치 채셨는가? 이 영상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톤앤무드의 색상은 초록색이다. 체육복의 색깔, 버스의 색깔, 자주 등장하는 교실의 초록색 칠판... 이 모든게 계획된 거라니, 소름이 돋았다.

 

이 영상을 보고난 뒤, "와, 대체 저건 어떤 마케터가 기획한 것일까?", "정말 일 잘한다" 라는 생각에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 영상을 기획한 마케터를 찬양하며 몇 번씩 돌려봤었다.

 

그러다 최근에 읽게된 책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에서 너무 반갑게도 그 주인공을 찾을 수 있었다. "와 이 분이었구나!"라는 반가움에 밤을 새워서 이 책을 다 읽었다.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는 3~5년차 마케터들의 이야기이다. 영프로페셔널, 젊고 능력있는 실무 마케터 전문가들이 자신의 일의 철학과 커리어에 대해 말하는 책이다. 책의 저자는 배달의 민족 이승희 마케터, 스페이스 오디티 정혜윤 마케터, 에어비앤비 손하빈 마케터, 트레바리 이육헌 마케터 이렇게 4명인데, PUBLY 매거진에서 기획한 컨텐츠다. 그래서 이 책은 마케팅 부서에 발령받은 신입사원이나 마케터를 꿈꾸는 취준생들이 읽으면 정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이다.

 

 

 

4명의 저자들 중 본 글의 서두에서 말한 '우리 지난 날의 온도'를 기획한 마케터는 바로 스페이스오디티의 정혜윤 마케터다. 사실 스페이스오디티라는 기업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스페이스오디티는 음악을 기반으로하여 다양한 음원, 영상, 브랜드 콘텐츠, 오프라인 행사, 데이터 진단 등의 다양한 일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스타트업이다. 이 스타트업의 행보를 들여다보면 정말 음악과 관련된 모든 일을 한다.

 

 

http://www.sportsseoul.com/news/read/580850

 

 

음악은 다른 콘텐츠와 결합하기 좋은 콘텐츠, 다양한 크리에이터의 데뷔 플랫폼, 이종교배 플랫폼 그리고 비어 있는 캔버스가 될 수 있다.

- 김홍기, 스페이스 오디티 대표 -

 

스페이스오디티는 음악을 기반으로 하는 마케팅과 브랜딩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어요. 2017년 겨울, 많은 분이 공감해준 멜론의 브랜디드 콘텐츠를 보면 스페이스오디티의 '음악 브랜딩'이 잘 드러납니다. (...) 우리는 자칫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기술을 좀 더 감성적으로 풀기 위해 멜론이 주인공인 브랜드 필름을 만들기로 했어요.

-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 이승희/정혜윤/손하빈/이육헌, book by PUBLY, p166 -

 

정혜윤 마케터의 글을 읽다보면 정말 자신의 업을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정혜윤 마케터는 '우주'와 '음악', '책'과 '콘텐츠' 덕후다. 어쩜 이렇게 자신과 어울리는 회사에서 자기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 수 있을까? 질투가 나다못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녀는 자신의 회사이름과 마찬가지로 좋은 의미에서 '괴짜'다. 그리고 사실상 정밀한 세그먼팅을 통해 잠재고객들에게 브랜드 경험을 소구하는게 업인 마케터는 철저히 '덕후'여야만 가능하다.

 

 

https://brunch.co.kr/@brunch/148

 

 

오디티는 쉽게 말하면 별종, 괴짜라는 뜻입니다. 별종과 괴짜는 튈 정도로 남과 다른 사람이죠. 누구나 콘텐츠를 만드는 시대에 경쟁력은 '다름'에서 나옵니다. 자기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의 주의를 끌어요. 남이 가보지 않은 길을 앞장서며 트렌드를 이끌기도 하고요. 스스로 판을 벌이고 영역을 넓혀가는 오디티는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때로 작은 감동과 용기를 줘요. 그래서 우리는 오디티를 주목하고 존경하며 응원합니다.

-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 이승희/정혜윤/손하빈/이육헌, book by PUBLY, p160 -

 

그렇다면 그녀는 어떻게 이런 덕업일치의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정답은 앞서 말한 '덕후 기질', '많은 경험', 그리고 이에 대한 '공개적 글쓰기'에 있다. 정혜윤 마케터는 이미 Brunch에서도 1.3만명이라는 구독자라는 거대한 팬덤을 소유한 작가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퇴사는 여행>이라는 독립출판물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 다재다능한 그녀가 스페이스오디티에 입사하여 덕업일치를 완성할 수 있었던 여정을 살펴 보면 '덕후기질', '많은 경험', '공개적 글쓰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게 된다.

 

2016년 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소속 없이 마음 가는 대로 해보는 시간을 갖겠다'는 선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실천하는 한 해를 보냈어요. 프리랜서로 돈도 벌어보고, 디지털 노마드 프로젝트에도 참여했습니다. 혼자서 배낭 하나 메고 동남아로 떠나 스쿠터로 시골길을 돌고, 코끼리 보호소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새벽에 화산 트래킹을 하고, 태국 요리와 서핑을 배우고, 타투도 하고... 그 어느 때보다 난생 처음 해보는 게 많았던 1년이었습니다. 바르셀로나에 사는 친구를 보러 유럽에 다녀왔고, 사막에 생기는 도시이자 꿈꾸고 행동하는 자들의 네트워크, 버닝맨에도 다녀왔습니다. 그렇게 온전히 저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간의 이야기를 브런치에 꾸준히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쓰자 저를 궁금해하는 분들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참 신기하게도 글을 통해 맺은 인연은 다양한 기회로 이어졌습니다. 인생의 쉼표를 제대로 찍겠다는 선언을 하고 몇 달 동안 많은 분이 함께 일해보고 싶다고 제안하셨어요. 정말 감사하고 과분하게도 매력적인 기회가 많았지만, 대부분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아직 스스로 다짐한 만큼 충분히 도전해보고 실험해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였고, 두 번째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의 방향이 음악, 문화, 콘텐츠를 가리키고 있다는 걸 알았기 떄문입니다. 그러다가 스페이스 오디티를 만났습니다.

-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 이승희/정혜윤/손하빈/이육헌, book by PUBLY, p150 -
김홍기 대표는 특히 제가 2014년과 2016년, 세계 최대 음악 축제 글래스톤베리에 두 번 다녀온 후 마케팅 관점으로 쓴 글을 재미있어 했습니다. '자기 돈 내고 이런 곳에 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며, 이런 특별한 경험을 하는 게 일에도 분명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스페이스 오디티 멤버들은 그런 사람들로 꾸리고 싶다며 함께 일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 이승희/정혜윤/손하빈/이육헌, book by PUBLY, p155 -

 

 

 

정혜윤 마케터의 일화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스티브 잡스의 유명 연설, '스탠포드 졸업 축사'가 생각난다. 이 연설에서 스티브 잡스는 Connecting Dots라는 개념을 언급한다. 살아가다 보면 우연히 찍어놨던 점들이 연결되면서 선이되고 면이 된다는 의미다. 다시말해 우리가 의도치 않게 행한 모든 일들이 연결되고 확장되다보면 어느새 그게 우리의 인생을 전혀 다른 멋진 방향으로 끌고 간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열심히 점을 찍는 행위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우리 삶의 멋진 그림이 완성되어 있을 테니까.

 

그런 측면에서 정혜윤 마케터는 길지 않은 자신의 인생에서 '덕후기질', '많은 경험', '공개적 글쓰기'라는 점을 참으로 열심히도 찍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덕업일치'를 완성할 수 있게끔 한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앞으로 정혜윤 마케터가 계속해서 찍게될 점들이 어떤 그림이 될 지 기대되고 주목하게 된다.

 

그러니 어찌 우리도 각자의 취향을 공고히 하여 촉을 세우고,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과 많은 경험에 부지런히 노출되고, 이를 바탕으로 블로그나 브런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공개적으로 글을 써서 기록을 남기는 것을 마다하겠는가? 결국 열심히 덕질하고 열심히 경험하고 열심히 쓰는 사람에게는 '덕업일치'라는 선물을 하늘이 선물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덕업일치'를 꿈꾼다면 지금 당장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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