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중요한 발명품은 무엇일까? 다시 말해 인류의 번영에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발명품은 무엇일까?
시사 주간지 TIME에서는 인류의 100대 발명품을 선정한 적이 있다. TIME 지에서는 인류 역사에 미친 영향력과 중요도를 기준으로 100개의 발명품들을 쭉 나열할 때, '바퀴'와 동급인 것들이 '문자', '농경', '인쇄술', '컴퓨터'라고 정리했다.
바퀴는 혁신이었다. 바퀴 덕분에 인류는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면서 무거운 중량의 물체들을 이동시킬 수 있었다. 인류의 노동 효율이 급증하게 된 계기였다. 뿐만 아니라 장거리의 대규모 물자 수송이 가능해진 이유도 바퀴 때문이다. 이처럼 이동 효율이 높아졌다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바퀴의 발명으로 인류의 이동 가능 반경은 매우 넓어졌다. 이는 곧 다른 부족, 국가, 문명 간의 교역을 가능하게 했다. 바퀴는 인류 집단 간의 링킹(Linking)을 구축하고, 네트워크의 빈도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배경을 만들어줬다는 것이 핵심이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바퀴는 곧 연결"을 의미했다. 그리고 연결은 결속 혹은 충돌을 강화하고 이 과정에서 역사는 발전한다. 그러니 TIME지가 '바퀴'를 최고의 발명품으로 선정한 것은 꽤 그럴듯하다.
인류의 문화, 충돌, 연계의 빅히스토리를 다룬 타밈 안사리의 책,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에서도 역시 '바퀴'에 대한 내용이 빠지지 않고 나온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좋은 책'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입증된다. 인류사를 다루는 빅 히스토리 책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발명품을 다루지 않는다면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책에서는 인류 역사에서 '바퀴'가 어디서 어떻게 출현했는지, 그리고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한다.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바퀴 달린 수레를 처음 사용한 것이 최초로 기록된 시기는 기원전 3,500년경 메소포타미아에서였다고 한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같은 시기에 인도와 중국에서도 바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바퀴는 동반구를 넘어서 북서 유럽을 비롯한 각 문명권으로 전파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야, 아즈텍, 잉카 등의 아메리카 문명에서는 동반구 문명권에서처럼 바퀴가 실용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기껏해야 아이들 장난감, 달력 정도로만 사용되었다고 할 뿐이다.
대체 왜일까?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의 저자 타밈 안사리는 각 문명들의 환경적 차이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유라시아 문명, 중국, 인도 문명은 바퀴를 사용하기에 적합한 환경이었던 반면, 아메리카 대륙은 부적합한 환경이라는 것일까?
이에 대해 자세히 논하기 전에 먼저 바퀴가 실용적으로 쓰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해보자.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면 과거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 사극에서 바퀴가 어떻게 등장했었는지를 생각해보면 쉽다. 눈을 감고 생각을 되짚어보자. 무엇이 보이는가?
그렇다. 바퀴 위에 얹힌 수레의 앞쪽에는 항상 말이나 소가 있다. 바퀴는 그 자체로 동력을 지니지 못한다. 그저 보조 수단일 뿐이다. 인간이 이동시키기 힘들거나 불가능한 중량의 무엇을 바퀴라는 보조수단을 활용해서 먼 거리를 옮기기 위해서는 말이나 소, 낙타와 같은 동물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 점을 고려할 때, 앞서 말했듯 아메리카 문명의 환경요인은 바퀴가 제 몫을 온전히 다 하기에 부적합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바퀴 달린 수레를 끌어줄 온순하면서도 힘이 센 동물이 없었다. 환경적으로 말이나 소 같은 가축이 존재하지 않는 지역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바퀴가 있어도 실상 혁신적인 이동수단으로 활용될 여지가 적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은 원래의 수렵 채집 생활 방식을 꾸준히 개선해 나갔다. 이유는 단순하다. 북아메리카에는 길들일 만한 동물들이 없었다. 북아메리카에는 양도 염소도 젖소도 없었다. 가축으로 키울만한 동물이 하나도 없었다. (...) 게다가 아메리카 대륙에는 동반구 사람들이 교통수단과 운반수단으로 사용한 동물들이 없었다. 아메리카 대륙에는 말이 없었다. 그것은 의미심장한 차이였다. 소도 당나귀도 노새도 없었다. 안데스 산맥 지대에는 낙타과에 속하는 라마가 있었지만, 라마의 얇은 다리는 정말 무거운 짐을 싣거나 끌고 가기에 부적합했다.
-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 타밈 안사리, p233 -
반면 동반구의 문명권에서는 말이나 소와 같은 동물이 거주하기 적합한 환경이었다. 실제로 이런 환경 덕분에 해당 문명에서는 수렵 채집의 단계에서 농경, 가축의 단계로 빠르게 발전할 수 있기도 했다. 이 말인즉슨, 그들은 바퀴를 굉장히 중요한 혁신적 도구로 활용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타고났다는 것이다.
동반구에서는 바퀴의 중요성이 커졌다. 바퀴는 수레에 끼울 수 있었고, 바퀴가 달린 수레는 실은 뒤 크고 힘센 짐승을 이용해 끌고 갈 수 있었다. 일단 수레가 일상생활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자 사람들은 그 둥근 물건의 쓰임새를 궁리하기 시작했다. 한편,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무거운 수레를 끌 만한 동물이 없었기 때문에 바퀴를 개량해본 들 의미가 없었다. 물론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바퀴가 발명되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둥근 물건-이를테면 달력과 아이들의 장난감 같은 것-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원형의 물건이 기계 부품으로 쓰일 경우의 잠재력을 개발하지 않았다.
-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 타밈 안사리, p234-
이처럼 주어진 환경의 차이가 인간의 역사의 방향성을 결정한다는 사실은 놀랍다. 다만 환경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운명론적, 결정론적 역사관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그러한 시각은 자칫하면 '어차피 정해진 것이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는 무기력으로 이어지거나, 부당하고 비 인륜적인 행위에 당위성과 근거를 심어주는 서사적 배경으로 악용될 위험이 있다. 오히려 인류 역사는 환경에 의해 종속된 것처럼 보이면서도, 주어진 환경의 제약을 이용하여 굴절적응 하거나, 이를 극복해내는 일련의 과정이기도 하다.
환경은 우리가 생존을 위해 하는 일을 결정하고, 그 일은 우리가 집단으로서 단결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그러므로 환경적 차이는 중요한 문화적 차이를 낳는다. (...) 환경은 생활방식의 모태였다.
-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 타밈 안사리, p44~45 -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속해있는 환경적 배경에 대해, 한 걸음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깊게 조망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우리 모습을 만들어온 것은 어떤 환경적 배경에 의한 것일 수 있다. 그리고 과거와 달리 현재 우리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굉장히 쉽게 새로운 환경에 자신을 노출시킬 여지가 충분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항상 자신이 처해있는 환경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지금 내가 처해있는 환경적 조건은 앞으로 나를 어떤 곳으로 데려다 놓을까?'
'나에게 주어진 환경조건을 어떻게 활용하거나 극복해야 할까?'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다음 할 일은 과거와 현재의 환경에 대한 고찰을 바탕으로, 향후 자신이 속해야 할 이상적인 환경을 적극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이처럼 역사공부는 비단 교양적, 교육적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스케일을 낮춰서 면밀히 살펴보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던 역사적 사실들이, 개인의 인생에 적용할 수 있는 현실적인 교훈과 방법론으로 탈바꿈한다.
이것이 현재의 우리가 과거의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앞길을 어렴풋이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지나온 길을 살펴봐야 한다. - 타밈 안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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